1945년~1949년의 5년의 격동기
국제시장 영화를 이해하려면 1945년~1949년 5년의 격동기였던 시대의 흐름을 알아야 이해하기가 더 쉬워집니다.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이 종결됨에 따라 한국은 일본의 불법적인 점령으로부터 해방되었고, 카이로회담에서 나라의 독립이 약속은 되어 있었으나, 북위 38도선을 경계로 하여 남과 북에 미소 양군이 분할 진주함으로써 국토의 분단이라는 비참한 운명에 놓이게 되었고, 그 해 8월 9일 뒤늦게 대일 전에 참가한 소련군은 허울뿐인 관동군을 격파하면서 파죽지세로 남하하여 8월 13일 제25군단의 일부가 청진에 상륙하고, 8월 22일에는 평양에 진주하였고, 미군 제24사단은 9월 8일에야 인천에 상륙하여 이튿날 서울에 진주하였고, 미소 양군의 한반도 진주 목적은 일본군의 무장해제 등 전후처리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북한에 진주한 소련 군정당국은 남북간의 왕래와 일체의 통신연락을 단절시키고 38도선을 남북을 가르는 정치적 경계선으로 만들었으며, 공산화통일이 보장되지 않는 어떠한 통일정부수립도 거부하고, 한반도의 반영구적인 정치적 분단을 강요하하였고, 한반도에서의 지배권 강화를 목표로 하는 소련의 기도와 적대정부의 출현만은 절대로 반대하는 미국의 입장과는 타협이 될 수 없었고, 따라서 한국의 통일독립 문제의 해결은 극히 어려웠으며 이 문제를 위해 개최된 미소공동위원회도 결렬되고 말았다. 1947년 중반에 이르러 미국은 마침내 단일정부의 수립과 신탁통치의 실시를 전제로 하여 한반도를 통일하려 했던 종래의 대한 정책을 포기하고, 분단의 고정화라는 기정사실을 바탕으로 하여 한반도의 세력균형을 보장할 수 있는 새로운 대안을 모색하기에 이르렀고, 유엔은 1947년 제2차 총회에서 통일된 한국정부수립을 위한 총선거를 1948젼 5월 31일 이전에 한반도 전역에서 실시하기로 결의하고, 선거감시를 위한 유엔 한국임시위원단을 구성하였다. 그러나 유엔이 결의한 전국적 범위에서의 총선거는 1948년 1월 소련 군정당국이 이의 수락을 거부하고 유엔 한국임시위원단의 북한지역 출입을 막음으로써 좌절되었고, 1948년 2월 26일 유엔 소총회는 '유엔의 감시가 가능한 지역에서의 선거실시'를 결의하고, 이에 따라 1948년 5월 10일 38도선 이남지역에서 유엔 감시하의 자유 총선거가 실시되어 제헌국회가 구성되었으며, 1948년 8월 15일에는 대한민국의 건국이 세계만방에 선포되었고, 소련군의 비호 아래 북한지역을 장악한 길일성 등 공산주의자들은 1948년 9월 1일 이른바 '흑백선거'에 의하여 북한지역에 독자적 공산정권인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을 선포하고 소련을 비롯한 공산 제국의 승인을 얻어냈다. 그러나 1948년 12월 12일 제3차 유엔총회는 대한민국정부만이 '한반도에 존재하는 유일한 합법정부'임을 대한민국의 법통을 확인하였다. 1949년 북한 소련과 '조소군사비밀협정'을 체결하고 남한에서 주한미군 철수를 하게 되었고, 1950년 6월 25일 새벽에 북한 공산군이 남북군사분계선이던 38선 전역에 걸쳐 불법 남침함으로써 일어난 한반도에서의 전쟁이 시작되었습니다.
메러디스 빅토리호
1950년 9월 맥아더 장군의 인천상륙작전을 성공으로 국군은 압록강까지 진출하였지만 중공군의 개입으로 다시 밀려 내려오는 탓에 이곳 흥남에서 고립된 한국군을 도와주던 미군은 철수작전으로 선박 1대를 보냈고, 철수작전은 무리 없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었지만 이곳에 있던 피난민들이 남쪽으로 내려가려고 10만이 넘는 피난민들은 선박에 태워달라고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고, 하지만 군수물자를 가득 싣고 있었던 선박은 피난민을 다 태우고 갈 수가 없었던 그때 선박의 미군함장의 선택은 피난민을 한 명이라도 더 태우고 가기 위해 군수물자를 버리라는 명령을 내리고, 1950년 12월 23일 오전 11시 메러디스 빅토리호는 흥남부두에서 피난민14,000여 명을 선박에 태우게 됩니다. 바로 그 선박에 타기 위해 어린 덕수와 가족들은 사력을 다해 뛰었고 덕수는 동생을 업은 채로 밧줄을 타고 올라가고 있었는데 뭔가 쑥 빠지는 느낌은 있었으나 밧줄을 타고 올라가야만 된다는 신념으로 간신히 배 위에 올라간 덕수는 그때서야 막순이가 없어졌음을 알고 큰소리로 아무리 불려도 막순 이를 찾을 길이 없었고, 그때 그의 아버지는 덕수에게 집안의 가장이라고 하면서 자신의 겉옷을 덕수에게 덮여주면서 부산 국제시장 꽃분이네를 찾아가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으라고 하고 막순 이를 찾으려 선박밑으로 내려간 아버지를 목이 터져라 불려 보지만 배는 출발하고 아버지와의 거리는 점점 멀어져 가는 안타깝고 가슴이 먹먹해지는 아픔을 안고 부산에 도착한 덕수네는 국제시장을 찾아서 꽃분이네 가게에서 고모와 만나고, 그 당시 고모의 형편도 어려웠는데 덕수네에게 방 하나를 내어주고 그렇게 고모와 한 집에서 지내게 되고, 덕수도 가장으로 놀고만 있을 수가 없어서 새로 사귄 친구 달수가 하고 있는 구두닦이를 배워 약간의 돈을 벌기 시작합니다. 덕수는 배의 선장이 되는 게 자신의 꿈이라고 말합니다.
그를 따라다니는 가장의 무게는 점점 무거워지고
전쟁이 끝나가는데도 아버지는 나타나지 않고, 어린 덕수는 엄마와 동생들의 가장이라는 책임을 가지고 살아가게 됩니다. 전쟁은 끝이 아니라 정전협상으로 끝나면서 남과 북 사이에는 38선이 있어, 서로 38선에 침범하지 않는 조건으로 협상되고 사람들 역시도 오고가는 길이 없어 북한으로 갈 수도, 북한에서 남한으로 올 수도 없는 지경이 되어 버리는 이산가족들한테는 가슴 아픈 협상이 되어 버렸습니다. 전쟁이 휩쓸고 간 부산 국제시장도 삶이 쉽게 나아지지 않고 덕수는 이제 청년이 되었습니다. 덕수는 부산 해양대학교에 합격하게 되었지만 집안의 사정으로 대학을 포기하고 동생들을 위하여 돈이 되는 일이라면 가리지 않고 열심히 일하는 덕수에게는 하루하루 삶을 이어주는 생활만 해오던 차에 그의 동생은 서울대학교에 합격하는 기쁨을 주지만, 덕수에게는 동생을 공부시킬 등록금 마련도 어려운 실정에 친구 달수가 독일 광부모집 광고를 덕수에게 주고 그것을 본 덕수는 부산에서 일하는 일급보다 훨씬 높은 임금을 보고 독일로 가기로 결정하고 그는 독일에 가게 된 덕수는 머나먼 독일에서 수백 미터가 되는 지하에서 언제 위험이 닥칠지 모르는 현장에서도 그는 가족을 위해 열심히 일을 합니다. 독일에서 간호사로 나온 영자와 덕수는 첫눈에 서로 사랑하게 되고, 덕수는 처음으로 가족이 아닌 자신을 위해 영자와 행복한 데이트를 하고는 행복해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덕수가 일하는 광산에 갱도가 터지면서 많은 사람들이 부상을 입는 사고가 나고 영자가 볼 때는 누군가 구조하려 가야 하는데 아무도 들어가기를 꺼려하고 있는 상황을 본 영자는 덕수를 구조해야 한다는 일념으로 계속 사람들에게 구조해야 한다고 합니다. 마침내 광산일을 하는 동료 한국인들이 협동해서 들어가지 못하게 막은 경고문을 부숴버리고 갱도에 내려가 덕수를 찾아서 나오게 되는 기적을 우리는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는 한동안 병원에서 치료를 마치고, 광부일은 더 이상 할 수 없게 되자 한국으로 되돌아옵니다. 그는 다시 국제시장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는데 영자가 찾아오고 그렇게 둘은 결혼하고, 덕수가 조금 모아놓았던 돈은 그의 동생 미자 결혼식에 사용하게 되면서 빈털터리가 되고, 또다시 그는 베트남 참전에 돈 벌려고 떠나는 덕수, 베트남에 도착한 그에게 삶과 죽음이 늘 교차되고 있었습니다. 거기에서 그는 다리에 총상을 입어 죽을 고비를 넘기고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는 모르지만 사고로 인해 다리를 저는 상태가 되었고, 그런 몸으로 국제시장으로 돌아온 남편을 본 영자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고 있습니다.
이산가족 찾기
1983년경 이산가족 찾기 운동이 시작되고 각 매체에서 이산가족인 사람은 신청을 하라는 내용을 본 덕수도 아버지와 막순이를 찾기 위해 가족신청을 하여 이산가족 찾기 광장을 샅샅이 살펴보지만 그가 찾는 아버지와 막순 이를 보이지 않고 허망한 마음만 가지고 부산으로 돌아온 덕수에게 어느 날 미국에서 자신을 찾는다는 전화를 받고 서로 대화를 주고받고 하면서 막순이가 맞다고 확신한 덕수와 막순이의 첫 만남의 전화는 울음바다가 되었습니다. 얼마의 시간이 흐른 후 막순이는 엄마가 있는 부산국제시장을 찾아와 덕수네에 모든 가족이 모여서 축하파티를 하고 있었고, 마음 한편에 아버지를 항상 기다려왔을 덕수는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 아버지의 사진을 보면서 '아버지 저 잘 살아왔는 거 맞지예 하고, 그동안 내는 산다고 너무 힘들었다'라는 말을 하면서 눈물을 쏟아 냅니다. 그토록 기다렸던 아버지를 자신의 마음에서 내려놓으려 하는 덕수, 마지막에 아내 영자와 나누는 대화에서 국제시장에 있는 자신의 가게를 팔라고 합니다. 그러고는 자신은 '자기가 원하는 소원은 모두 이루어 뿟다'고 하면서 영화는 끝이 납니다. 영화에서 덕수라는 설정의 사람이 가족들의 가장으로 열심히 사는 모습은 우리들의 형제였고, 부모였고 할아버지, 할머니였습니다. 그 시대에는 누나가 남동생을 공부시키는 일은 어느 집에서나 있을법한 일이었고, 희생을 하라고 강요를 안 해도 당연사되는 그런 시대였습니다. 덕수 같은 형도 부지기수였고 전쟁을 겪어온 윗대들의 강인한 정신력은 산업화를 이끌어낸 장본인들로 대한민국을 잘 살게 만든 일등공신들이라고 감히 말하고 싶습니다. 저도 그들의 자손임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1950년대의 대한민국 상황과 2023년의 대한민국 상황과 비교했을 이렇게 발전이 빠른 나라는 아마 세계에서 1위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저는 이번 국제시장이라는 영화를 보면서 한국의 역사도 조금 더 알게 되어 감회가 새롭습니다.